귤맛 치약 편에서 이어짐
올해 초인지 작년 말 즘에 봤던 신점을 봤다는 일기를 적었지
신점 보는 거 처음이라 좀 무서워서 그림 업계에서 일 하는 지인 두 분이랑 같이 갔었다.
세 명이서 보는 거라 순서를 정해야 했음
나이순으로 정했고 (내가 젤 언니여서) 내가 제일 마지막 타자였다.
다른 두 분은 고민 내용 그대로 점괘를 봐주셨다.
그림 업계에서 취직할 수 있냐 하면 그림 꾸준히 그리면서 돈 벌면서 수 있다거나,
이런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데 앞으로도 어떨지를 물으면 업계에서 나름 일감도 꾸준히 들어오고 잘 될 거라고 얘기해준다거나.
어느정도 질문의 테두리 안에서 답변해주시고 가족얘기나 과거도 잘맞추고 분위기 좋았음.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처음에 보자마자 나는 예체능 쪽보단 공무원이나 선생님 같은 걸 할 인간이다
문서 정리나 서류 정리 잘 할 것 같다는 말 하심
근데 왜 그림 그리고 있는지 의아하단 투로 말하셨다
하하, 공무원 집안이라 부모님 팔자 따라가나 봐요
그리고 저도 그림 시작한 걸 조금 후회하고 있습니다
라는 대답 한 것 같은데, 속이 상한 건 사실이었다. 그래도 그림쪽을 진로로 정했으니까.
그래서 그림 주제로 넘어가니까 '그림체가 특이하시네요' 이 소리를 들었다.
(솔직히 엄청 특이한 편도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적당한 부분에서 스타일이 있다는 건 인정하고, 그런 소리 꽤 들어서 (같이 갔던 두 분도 이 말 듣고 놀램.) 그 무당분께 신용이 생김.
그래서 나도 어느 정도 기대를 했다.
나도 당연히 '만화가로 좋은 작품 할 수 있나요?' '데뷔할 수 있나요?' 이런 거 물어봤음
그런데 갑자기 예상이랑 다른 내용을 언급함
갑자기 나 딱 보시더니 너는 뭔가 다른 쪽으로 꺾일 거라고
웹툰쪽으로 가면 데뷔는 할 수 있고 돈도 나름 벌지만 마니아만 즐기게 된다고.
하면서 스스로 무척 괴로울 거라고.
그쪽으로 가도 나쁘지 않지만 다른 일로 가야 돈을 훨씬 번다고 그랬음
솔직히 나도 내가 지향하는 지점과 한계를 알고 있어서 대중적으로 큰 성공따위는 바라지도 않는다.
파란머리 여주 판타지물 그리는 게 한국에 얼마나 통한다고. 슬프다.
그래도 마니아 분들이라도 생기는구나 싶어서 내심 행복했다.
그냥 만화 그리면서 크게 (금전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확신만 가지고 싶어서 한 번 더 물었는데
그러더니 대뜸 한국을 대표하는 만화가가 된다거나, 남녀노소 즐기는 그런 대작은 못 그려~ 이러시더라
아니 그건 이미 알고 있어요 남녀노소 바라지도 않는다구요.
나는 내 만화나 그림을 우리 할머니 아빠 엄마 이모 조카에게 죽어도 보여주고 싶지 않아요.
드라마, 영화화 되는 장르는 내 지향점도 아니고, 한국의 리얼리즘을 담는 메이저 장르 못 그린다는 거 안다구요! 그냥 웹툰작가로 크게 성공하냐구요!
(= 웹툰 그리면서 작품 잘 마무리 하고 독립할 정도로 돈을 벌 수 있나요?)
라는 질문을 하는데 자꾸 다른 얘기만 하셨다.
일감을 받는 고용자가 아니라 여러 사람을 다루는 직책,
뭉뚱그려서 PD같은 느낌의 이런 일을 하게 된다였나.
어느 순간 만화 그만 두고 팀장이 될 사람이다.
만화 쪽이 아니라 그 쪽으로 가야 돈을 훨 번다 이런 얘기만 줄창하심.
나 : 그럼 만화 그만 두어야 하나요? 웹툰 PD로 진로 꺾을까요?
회사에 취직하는 게 좋을까요?
UI나 웹툰 채색 파트나 선화 담당같은... 다른 그림 기술을 배우는 게 좋을까요?
무당 : 그만 두지는 말고, 계속 한 번 할 수 있는데까지 해보세요
아까 저는 공무원이나 회계보는 게 적성이라면서요.
(솔직하게 신점 보러간 이유가 그림 관두고 싶어서 진로 꺾으라고 하면 새겨들으려고 했다)
이 대화만 자꾸 이어지는 게 살짝 열 오르고, 진짜 어쩌라는 건지 싶어서 내가 조금 언성 높아지니까
같이 간 지인들이 만화가로 성공해서 어시들을 잔뜩 고용하는 거 아니냐고 그랬는데 (위로해주듯이)
점봐주시는 분이 그런 느낌이 아니라고 (확언하심)
결국 나는 만화는 취미로 그리게 될 거라고 그랬음
그러고선 언젠가 내가 아니라 남을 위한 일을 할 거라고 하심.
누구를 가르치고, 좋은 작품이 되게 코칭 해주는 강의 느낌을 하게 될 거라 그랬나.
아니 대학도 안 나오고 마땅한 작품이나 포트폴리오도 없는데 제가 뭘 쳐 가르쳐요.
뭘 양성하고 뭘 강의를 합니까?
그 다음 재차 만화가 데뷔할 수 있나요? 공모전을 나갈 건데 되나요?
물으니까, 전혀 그런 기운 없다고 하심. (이 부분은 맞췄다. 내가 공모전에 작품을 안 냈기 때문이지)
살짝 현실타격 와서 잠깐 멍해졌다.
진로 고민이 멍청해진 느낌?
그 틈을 타 갑자기 결혼 얘기로 돌리시는 거임.
난 연애 결혼보다 내 진로 문제가 더 급해서 그 화제를 넘기려고 했는데
분위기가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음. 같이 갔던 분들도 그런 쪽을 더 재미있어 하시는 것 같아서 얘기를 마무리 할 수가 없었음.
이 쯤 되니 이런 사족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점 다 보고 헤어지는 분위기가 되도 나는 이런 표정이었음
나는 내 삶의 제 1 순위로 내 작품을 하고 싶은 종족이다. 그런 인간임.
갑자기 남을 위해 일할 것이다. 만화는 취미다. 결국 딴 길 간다. 이런 얘기 줄창 들으니까
결국 난 어떤 일도 작품도 성취 할 수 없다고 저주하신 것 같아서 너무너무 슬펐음.
그림쪽에서 회의가 너무 강해서 조금의 확신을 얻고 싶었던 것 뿐인데.
다른 직종으로 옮겨도 내가 내 작품을 하는 순간이 왔으면 했던 것 뿐인데.
그 날 너무 슬퍼서 집 와서 울었다.
펑펑 울어서 감기까지 들었어.
그래서 요즘이 더 울적하나 봄.
난 뭣도 할 수 없을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