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15] 슬픈 12월 보름의 귤맛 치약





잠실에서 본 커여운 물건들






채선당 샤브샤브에는 감동이 있다.

월남쌈 먹으러 간 거지만 얼마 못 먹었음. 슬퍼...







자기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럽다.



나는 내 스스로에 대해 자신이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생각'에 확신을 가지는 걸 무서워하는 편이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겠지'
이렇게 디테일을 두루뭉실 넘기는, 판단을 유보하는 스타일인데.
빨리 생각을 단정 지으면 돌이킬 수 없는 편견이 생길까봐
그게 무서워서라도 일부러 '그게 아니지 않을까.' 하고 반대쪽 창구를 열어두려고 하는 것이다.



명확한 기준이 있는 상태에서 저렇다면
'사견을 끼우지 않은 상태로 여러 의견을 경청해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이 되겠지만,

슬프게도 그 '기준'이 없기 때문에
가뜩이나 혼란한 머릿속을 가지런히 정리하지 못하는 나에겐 독이 되는 듯 하다.



 
특히 이야기를 할 때 이 '독'의 영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누군가 어떤 주제에 대해 '나'의 의견을 물었다고 하자.

(너는 귤맛 치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이 때 나는 이 질문을 듣자마자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지 않은 파편화된 정보가 떠다닌다.

(내 머릿속 : 귤맛 치약,
보편적인 치약은 민트맛,
아니, 민트맛이 정말 보편적이라고 할 수 있나?
저사람의 경험 속에는 귤맛이 보편적일 수도 있잖아.
귤맛을 처음 들었다고 하면 상처 받거나 유행에 뒤떨어졌다고 하려나?
귤맛이면 신제품? 어디 상품인거지?
양치하고 귤을 먹었을 때 느끼는 떫떠름함을 없애기 위한 개발품인가.
정말 출시된 신제품은 아니고 if 놀이같은 건가?
'만약에 귤맛이 출시되면 너 살거야?' 이런거...)

여기서 내 의견은 거의 생성될 여력이 없다.
결론이 없으니까.

나에게 '결론'은 백지 퍼즐같은 것으로
오랜 시간, 퍼즐 한 조각 한 조각씩 맞춰가면
언젠가는 분명 완성은 될,
하지만 시기나 경험에 따라 퍼즐색이 변색 될 수도, 먼지가 묻을 수도,
내가 그 위에 직접 그림을 그릴 수도 있는...
틀만 존재하고 결과는 유동적인 물건과 비슷하다.

하지만 대화는 길지 않다.
질문자의 주의가 끌리는 몇분몇초 안에 결론을 내야하는 것이다.
(모른다고 대답만 해버리면 사회생활 망한다!)

이때를 돌파하는 가장 무난한 해결법.

저 질문자의 의도는 무엇인가?
나와의 관계는 어떤 관계인가?
저 분은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것인가?
내 대답을 듣고 어떻게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만약 상대방이 어떠한 사전 정보가 있는 상태라면

(ex : 저 분은 새로 나온 상품들은 한 번씩 사서 도전해보는 성향을 가지고 있었지.
작년에 곶감향 향수가 나왔을 때도 사셨고.
그리고 치약에 대해 열린 사고를 가지고 계셔.
예전에 '왜 치약은 민트맛만 있는 거야'라고 불평하셨잖아.) 

그 사람의 의견에 맞추어서 내 의견을 내는 편이다.

도출 대답 : 저는 귤맛 치약은 한 번 사볼 가치는 있는 제품이라 생각해요~.



하지만... 문제는 사전정보가 없는 타인을 상대할 때다.

처음만난, 그 사람에 대한 어떤 것도 모르는 데 질문을 받는 경우라면
특히 나에 대한 판단을 빨리 내려야하는 사람들 (ex) 선생님, 윗사람)을 대할 때나
대답에 압박이 있는 경우라면,

도출 대답 : 어... 음... 어... (5분 지난 뒤, 질문자가 거의 지루할 때쯤)
그게, 전 신제품? 이면, 음. 생각은 없는데
귤맛이란 게. 민트맛이랑은 다른 거잖아요.
민트랑 또 색깔도 보색 계열이고...
어제 양치 했다가 귤 먹었을 때, 음. 그거 있었으면 좋았으려나.
아니, 그렇다고 민트맛을 뭐라하는 건 아니고...
쌸라쌸라쌸라... (아무도 관심없는 얘기 중얼중얼)


그렇게 첫인상은 망해버리고, 멍청한 학생이 되고, 글러먹은 애가 되고~

이런 인상은 한 번 박히면 벗어나기 준내 어렵다.
그렇다고 내가 '억울해! 난 저런 사람이 아니야...! 이미지 반등 간다!'
이런 맘 품고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성격도 아님.

저 대답을 하고 분위기가 싸해지면
그 대답을 들은 사람들, 절대 안 만난다.
어차피 내가 뭘해도 그 사람은 저렇게 받아들일 거고
나도 점점 더 벽을 쳐서 말을 그르칠 확률이 높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 : '저는 말이죠~ 귤맛 별로예요~.
완전 안 팔릴 것 같은데 누가 그거 만들었대? 일단 저는 안 삼
아 참, 어제 여기 신제품 보셨어요? 이거 완전 가지고 싶던데~ 어쩌구저쩌구' 

나: 멍~
(저런 말 해도 되나. 나도 저런 대답했어야 하나. 뭔가 되게 아는 게 많으시네. 대단하다.)


이렇게 처음부터 자기 생각을 명확히 말하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고 신기하다.
어떻게 자기 생각을 믿고 다른 사람에게 전파할 수 있는 것인가?
그것도 초면인데...




'00님은 30대에 귤맛에 미쳐 살거예요.
양치질도 강박적으로 하실 거구요.
그리고 지금은 별로겠지만 중년 이후에 귤맛 치약 공장을 차리실 거고...
'예? 그럼 저는 다시는 민트 치약으로 돌아갈 수 없나요? 그럼 망해요?'
'그런 식으로 가시면 안 된다는 거죠. 00님이 알 거예요.
언젠가 그 쪽으로 갈거구요.
앞으로 뭐뭐 하시려면 마인드를 주황색으로 하시고...'
'?'

그래서 내 기본적인 신상만 알고
먼 미래 일까지 단정적으로 너 이럴 거다라고 말하는 그 무당선생님...
너무 곤란한 한편으로 정말 신기했다.

수백 수천의 사람들에게 단호한 판단을 내리는 일. 
불분명한 것을 확신하는 일.
기묘한 설득력을 가지고 타인을 대하는 사람.

이런 사람을 보면 부럽고 그렇다.
 


추신) 신점을 보고 와서 남기는 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블로그는 정말 편리한 창구가 아닐 수 없다.
내 의견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장소... 귀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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